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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근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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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   양태근 개인전
●  전시장소
●  전시기간
|   2018-10-10 ~ 2018-10-25
●  문의처
●  유/무료
|   무료
●  홈페이지
|   http://www.artbit.kr/web/exbVi…
상세정보  

본문

양태근개인전_1.jpg

전시명: 양태근개인전


전시기간: 2018.10.10.~ 2018.10.25.


전시장소: ARTBIT갤러리


전시소개



마주하는 공존의 시학


이문정(미술평론가,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종차별주의(speciesism)’란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그것은 일반적으로 동물과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는 인간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지배당해야 한다는 믿음과 태도를 지칭한다. 인간은 자신들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평등과 공존의 원리를 무시하고 다른 종들을 가혹하게 지배해왔다. 세상의 중심이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중심으로 한 현대 사회에서 동물은 인간에게 사육, 관리되어야 하며 인간 의존적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정설이 되었다. 인본주의에 근간한 모더니즘적 진보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세계관이 익숙한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려 한다. 아직도 인간과 동물(자연) 사이의 이분법적 위계관계는 확고하고 견고하다. 


한동안 양태근은 이와 같은 종차별주의의 현실과 동물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재현해왔다. 스스로를 이성적인 존재라 자부하는 인간에 의해 자행된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을 고발하고 경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양태근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간에 의해 살생되고 노예화된 자연의 모습은 상징과 은유로 정제되었음에도 잔혹하고 처참했다. 낯설게 해체되어 재조합된 불편한 이미지들은 문명이란 이름으로 망가뜨린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인간의 욕망이 점철된 문명사회의 야만적 파국은 『하이-라이즈 High-Rise』(1975)와 같은 소설에만 존재하는 허구가 아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인류가 꿈꿔온 유토피아(utopia)는 어느덧 디스토피아(dystopia)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처음부터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그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현재 우리의 세상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그려냈던 미래보다 낫다고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을까? 그러나 디스토피아에 영원히 함몰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비관적이라 보일 정도로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내던 양태근의 작업에도 언젠가부터 조금씩 희망적 공존이라는 메시지가 담기기 시작했다. 양태근의 작품 속 인간과 동물,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자연은 서로를 응시하게 되었다. 순환과 재생의 상징인 원의 형상이 반복되고, 돌고 돌아 인간과 동물은 한 공간에 머무르게 되었다.


인간도, 동물도 지구라 불리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이다. 세계 속 모든 존재들은 유의미하다. 클리셰(cliché)로 느껴질 정도의 익숙한 내러티브의 전개라 생각되는가?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힘든 길이다. 양태근은 생태주의를 말하면서도 막연하고 추상적인 해피엔딩에 빠지지 않는다. 일방적이었다 해도 자연과 인간은 관계를 형성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위치에 놓여 있다. 문명을 버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에서 끝나서도 안 된다. 그것은 또 하나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를 생산할 뿐이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이에 작가는 차분히 질문하고 여러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 유동적인 답을 강구한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 양태근이 내놓은 답은 서로 마주보는 지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작가는 직설적이지만 덤덤하게 말한다. 동물(자연 혹은 인간이 아닌 존재)은 그렇게 주변적이고 불완전하지 않다. 인간 역시 그렇게 잔혹하고 오만한 존재가 아니다.


서로 마주하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 서로의 존재 의미를 음미하고 함께 첫 발을 내딛는 그 길을 상상해본다. 





출처:  아트비트갤러리 

http://www.artbit.kr/web/exbView.html?pExb=past&pSeq=25&page=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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